1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 서론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가 겪은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를 기록합니다. 스데반의 순교 후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나고, 성도들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혹한 실패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이 사건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계획과 달리 위기를 기회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1. 하나님은 위기 속에서도 일하십니다(1~4절).
본문에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스데반이 죽고, 사울이 등장합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교회를 향한 거대한 박해의 서막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교회를 뿌리째 뽑겠다.” 그는 조직적으로 교회를 잔멸하려고 했습니다. 집집마다 들어가 남녀를 가리지 않고 그리스도인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아이러니하게도 복음을 확산시키는 도구가 됩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던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면서 복음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핍박받은 성도들은 도망치면서도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디를 가든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사울의 박해가 없었다면 복음은 예루살렘에 갇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까지도 사용하셔서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종종 이 땅에서 최고의 삶을 꿈꾸지만,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모으기도 하시고, 흩으시기도 하십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입니다.
2. 하나님은 성도의 고난을 통해 역사하십니다(5~8절).
예루살렘 성도들이 핍박을 받음으로 복음은 확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때로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그 이유는 우리의 삶을 더 값진 일에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편안함이 아니라 복음을 위한 삶으로 우리를 최적화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빌립이 좋은 예입니다. 그는 박해로 인해 사마리아로 갔습니다. 유대인에게 사마리아는 멸시받는 땅이었고, 빌립이 원해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귀신이 떠나가고 병자가 치유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8절). 박해로 시작된 사건이 기쁨으로 끝나는 놀라운 반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축복의 통로로 바꾸십니다. 오늘 우리의 어려움과 눈물도 하나님은 복음의 열매로 바꾸실 줄 믿습니다.
3. 우리의 삶을 복음에 최적화하십시오(4절).
군인은 전투에, 운동선수는 경기 준비에 최적화되어야 합니다. 예술가는 무대에, 권투선수는 경기에 맞추어 체중을 조절합니다. 연예인들은 카메라 앞에서 최상의 모습을 위해 먹고 싶은 것을 포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최적화되어야 합니까? 바로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딤후2:3-4). 복음에 최적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 재능, 자원, 열정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훈련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 결론
어떻게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최적화된 그리스도의 군사로 살 수 있을까요? 첫째, 자신의 삶을 이끌어오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삶의 목표를 나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맞추어야 합니다. 셋째, 그 사명을 위해 훈련에 참여해야 합니다. 다음 주부터 1부 목자예배에서 8주간의 목자훈련이 시작됩니다.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쓰임 받기 원하는 성도님들은 반드시 참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의 자리에서 축복의 자리로, 흩어짐 속에서 부흥의 역사로 이끄십니다.
“흩어짐이 두렵지 않은 이유는 그 끝에 하나님의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