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지금 바울은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로마의 주둔지 안토니오 요새에 갇혔습니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지도자 야고보에게 선교 보고를 했고 그의 권고를 따라 결례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유대 군중의 오해를 받아 죽임을 당할 뻔했습니다. 로마 장교 천부장의 개입으로 목숨을 건진 후 층대에서 행한 전도설교는 채 끝을 맺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문제를 다루자고 모인 산헤드린공회의가 아수라장으로 끝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재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맞은 밤, 마음까지 약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울 곁에 서셨습니다!
“담대하라. 여기서 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전도해야 한다!”
그를 격려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알고 보면 담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이유를 말씀드립니다.
1.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돌보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천부장의 개입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천부장은 결코 바울의 보호자나 변호자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기 위해 그가 취한 모든 과정은 결과적으로 바울에 대한 완벽한 보호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보호하시는 방법은 너무나 신기하여 상상을 초월합니다. 안 되는 것도 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할 일이 아닙니다.
2. 하나님의 인정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외양으로 볼 때 예루살렘에서 행한 것 모두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자 시작한 결례는 마무리하지도 못했습니다. 성전의 규칙을 어긴 사람으로 모함을 받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전한 설교 역시 끝맺음을 하지 못했습니다. 산헤드린공회 재판은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습니다. 엉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 몸부림을 충분하게 보셨습니다. 잘 하고 못하는 것보다 그 시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자 애를 썼다는 것 그 것이 중요합니다.
3. 하나님의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까지 가서도 그 사람들에게 똑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 지금 바울을 준비시키며 연단하셨습니다. 로마를 위해 예루살렘에서 시간을 보내게 하신 것입니다. 후일 이 비전은 더욱 확장됩니다(롬15:23, 28). 아무리 어려워도 지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추구하십시오. 우리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비전을 받으십시오. 그 일에 붙잡히십시오. 분명히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여, 어린아이처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4)
부모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보호를 누리는 어린아이는 절대 걱정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모릅니다.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신 아버지이십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 그 자녀의 마땅한 삶입니다. 이 어린아이의 마음을 회복하는 귀한 한 주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눅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