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36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37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 39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가장 먼저 야고보를 찾아갔습니다. 그간의 선교활동을 알렸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은 깊은 감명과 동시에 큰 부담을 느꼈습니다. 바울을 향한 유대인들의 적의(敵意)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궁여지책으로 결례에 동참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시도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동족 군중들에게 죽기 일보 직전까지 맞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천부장의 개입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여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바울은 달랐습니다! 기어코 기회를 얻어 죽이려 드는 자들에게 호소합니다. 동족 구원의 열망을 쏟아 부었습니다!
1. 자기가 누구인지 밝혔습니다(행22:1-5)
체포한 천부장조차도 바울이 이집트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38절). 유대인들은 바울을 모세와 율법, 성전을 하찮게 여기는 배신자로 몰았습니다. 바울은 외칩니다.
“나는 유대인입니다. 길리기아 다소가 고향입니다. 가말리엘의 제자입니다. 율법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을 다해 충성했습니다. 여러분들보다 훨씬 더 극렬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던 자입니다. 증인들도 있습니다.”
군중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공감을 끌어내고자 애를 썼습니다.
2. 어떻게 믿게 되었는지 밝혔습니다(행22:5-16)
사도행전에는 세 편의 바울의 설교가 나옵니다(9, 22, 26장). 그때마다 빼놓지 않고 예수님을 믿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목적지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강한 빛이 둘러 비쳤습니다. 얼마나 빛이 강했던지 눈이 멀었습니다. 그때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일행들도 강한 빛은 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소리는 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음성을 따라 다메섹으로 들어갔습니다. 비로소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바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이 체험을 한 후 바울은 그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3. 받은 소명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행22:17-21)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두 번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향한 부르심(요1:12)과 감당할 사명에 대한 부르심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이방인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거부와 이방선교에 대한 시급성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열거하는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거두절미하고 서둘러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에게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주여, 우리에게도 이런 확신을 주옵소서! 이제 마지막으로 동족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할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더 이상 듣지 않았습니다. 귀를 막았습니다. 바울을 이 세상에서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했습니다. 죽이라고 외쳤습니다. 옷을 벗어던지고 먼지를 흩뿌리면서 광분했습니다. 바울의 전도설교는 중단되었지만 열정은 시들지 않았습니다. 더 활활 타 올랐습니다. 아무리 강퍅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일단 복음이 들어가면 변화가 일어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확신이 필요합니다. 주여, 우리에게도 이런 확신을 주옵소서!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