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하박국 2:1-4, 14 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14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제4과. 성경을 읽는 법: 어떻게 읽을 것인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기록에 이르게 되었는가, 구약과 신약이 어떻게 정경이 되었는가, 오늘 우리가 우리말로 성경을 읽을 수 있기까지 어떤 번역의 과정을 거쳐 왔는가를 살펴보았다. 이렇게 한 이유는 성경의 고귀한 가치를 강조하는데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생명의 말씀인 성경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성경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다. 여행을 해봤을 것이다. 처음 여행할 때 어땠는가. 캐나다 캘거리에 두 달을 머문 적이 있다. 처음 아무것도 몰랐다. 다만 풍광이 좋았다. 만약 관광차를 타고 쭈욱 돌아보기만 했다면 나는 그 도시를 즐길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곳에서 두 달을 지냈다. 공원도시, 동물친화 도시 등등을 알게 됐다. 즐기게 됐다. 도시 하나를 아는 것과 즐기는 것도 그곳에 머물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는 세계였다. 무엇을 말하려고 그 도시 이야기를 하는지 짐작했을 것이다. 성경도 똑같다. 들어가서 몸에 배어들기까지 머물기, 살아보기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성경읽기는 그 말씀 안에 머물기이다.
말씀 안에 머물기 위해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이 읽기다. 말씀묵상은 성경 독서, 즉 성경 읽기이다. 단순한 읽기를 넘어 말씀으로 기도하는 데까지 이른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 경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와 사랑을 나누는 지경에 들어간다. 그 상태가 일상으로 이어진다. 내가 그 말씀 안으로 들어가고 그 말씀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내 삶이 그분의 말씀으로 가득해진다. 그 첫 걸음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읽는 것이다. 읽지만 읽기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 천천히 읽는다. 속독하는데 익숙한 사람은 말씀묵상을 배우기가 어렵다. 빨리 읽으면 쉽게 왔다 쉽게 사라진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생각해보라. 누가 이기는가? 우보천리 마보십리(牛步千里 馬步十里)다. 따라서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제대로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말씀의 온도를 느끼라. 자기 형성이고 성장이다. 주님께서 나를 읽으시도록 한다. 내 마음에 부딪치는 것이 무엇인지 머물러 천천히 읽는다. 침묵하고 반복하여 생각한다. 이 말씀이 왜 와 닿는지,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를 주의하여 읽는다.
2. 반복해서 읽는다. 성경을 몇 번 읽어야 하는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횟수를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몇 번을 읽으면 이해가 되는가? 전문 독서가 에밀 파게(Emile Faguet, 1847~1916)의 말을 빌려보면 인간 작가가 쓴 책의 어려운 대목을 스무번 정도 읽으면 파악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에밀 파게 저,「단단한 독서」, p230). 성경은 인간 두뇌의 차원에서 본다면 단연코 그보다 더 읽어야 한다. 에밀 파게가 말하는 작가군들보다 성경은 훨씬 더 시간적 간극이 큰 책이기 때문이다. 반복읽기를 권장하는 이유다.
반복하는 독서를 언급할 때마다 생각나는 곳이 있다. 충북 괴산 괴강가에 있는 억만재(億萬齋)라는 독특한 이름의 서재다. 조선의 다독가이자 문인이며 시인 김득신(1604-1684)이 책을 읽던 곳이다. 이 사람은 사마천의 사기 백이전을 11만3천독을 했다고 한다. 당시 10만을 억이라고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억만재다. 열 살에 천연두를 앓아 학습이 부진했던 그는 겨우 그 나이에 글을 깨쳤다. 당시 양반집 아들들은 세 살이면 글을 깨쳤다고 하니 얼마나 학습 진도가 느렸는지 잘 알 수 있다. 공부를 그만두라는 핀잔을 많이 들었다. 스무살이 되어서야 글을 쓸 줄 알았다. 그러나 결코 그는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읽고 또 읽었다. 만 번 이상 읽은 책이 36권이고 목록을 독수기(讀數記)로 남겼다. 환갑이 다 된 59세에 과거에 급제했을 정도로 대기만성형이었다. 그가 스스로 지은 묘비명의 내용이 감동적이면서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둔하고 미련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 달려 있을 따름이다.” 김득신이 이렇게 자신의 부진함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영향력이 컸다. 아버지 김씨는 우둔해서 겨우 스물에 스스로 작문을 하게 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더 노력해라. 공부란 꼭 과거를 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란다.” 학습 부진아(不進兒)인 아들을 탓하지 않고 늘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학문의 성취가 늦어도 성공할 수 있다. 읽고 또 읽으면 대문장가가 될 수 있다.” 비웃는 주위 사람들에게 아들 편에서 변호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저 아이가 저리 미숙하면서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대견스럽다네.” 아버지의 말대로 김득신은 말년에 당대 최고의 문인이자 시인으로 추앙을 받았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세상 지식을 연마하는 것에도 이렇게 진력을 다하는 이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3. 소리 내어 읽는다. 이 방법은 매우 단순하지만 매우 유용하고 효과가 크다. 반복해서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하지만 입으로 소리 내어 읽으면 자연스럽게 귀로 듣게 된다. 낭독(朗讀)과 음독(音讀)이 청독(聽讀)으로 이어진다. 집중력이 향상된다. 산만할 때 너무 피곤해서 졸릴 때 하면 좋다. 낭독은 안독(眼讀)보다 기억력을 일곱배나 증가시킨다. 소리 내어 읽기는 생각보다 역사가 깊다. 조선 시대에는 전기수(傳奇叟)라 하여 책을 읽어주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가 있었다. 책이 많지 않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도 흔치 않은 시절 한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책을 읽어주는 방법은 효과적인 학습법이었다. 문장이 입에 붙고 귀에 닳도록 거듭해서 소리 내어 읽다보면 문장이 몸에 익고 외워진다. 새겨지는 것이다.
성경은 소리 내어 읽기를 강조한다(느8장). 요시야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여덟 살에 왕의 자리에 오른다. 왕이 된지 18년이 되었을 때 요시야는 마음에 벼르던 일을 한다. 성전을 수리하는 일이다. 성전을 수리하던 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하고 서기관 사반에게 가져온다. 사반은 왕의 앞에서 이 율법책을 소리 내어 읽는다. 그 말씀을 듣던 왕 요시야가 옷을 찢는다(왕하22:11). 조상들이 율법책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과 백성들이 진노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말씀을 더 배우도록 명령을 내린다. 하나님의 말씀은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읽을 때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 소리 내어 읽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말고 행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4. 의미를 파악하며 읽는다. 정독(精讀)한다. 정독은 정밀한 읽기이다. 정밀한 읽기는 낱말과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작업이다. 문장의 의미를 아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문장이 모이면 단락을 이루어 문단이 된다. 글의 구조와 짜임을 알고 문맥을 파악하는 데까지 간다. 문맥은 문장과 문단, 글의 맥락이다. 이 맥락을 따라가면 배경과 전개의 흐름을 알게 된다. 낱말, 문장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 뉘앙스를 포착하고 고유의 뜻을 이해한다. 역사, 시 등 다양한 장르가 나온다. 문체, 묘사, 비유, 상징 등 낱낱의 표현과 서술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세심하게 읽어야 한다. 천천히 읽고 깊이 숙고해야 한다. 느릿느릿 문장과 행간을 읽는다.
5. 쓰면서 읽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애초부터 쓰기를 통해 생겨났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자들이 받아 적은 작업이 그것이다. 처음 받아 쓴 것을 원본(Autographa)이라 하고, 원본을 필사한 것을 사본(manuscript)이라 한다. 현재 원본은 남아있지 않고 사본의 사본만이 존재한다. 베껴 쓰는 작업이 없이는 성경이 오늘까지 전해질 수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디에 기록했을까? 돌판(출24:12), 금속판(출28:36), 토판(겔4:1), 파피루스(계5:1), 서기관들은 양피지, 송아지 가죽 등이다. 모세오경의 경우 양피지 36장, 두루마리를 펼치면 22m에 달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필사 작업은 계속되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그 말씀을 마음 판에 새겨 쓰는 것이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몸에 배어들게 해야 한다. 그 방법이 쓰면서 읽는 것이다. 읽으면서 중요한 단어나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단락의 주제어와 핵심어를 뽑아 적는다. 내용을 짧게 요약한다. 요약해보면 알게 된다. 요약하지만 요약 이상이다.
※ 성경의 창을 통해 세상과 하나님, 나 자신이 보일 때까지 읽어야 한다! 성경은 사물을 보는 창(窓)이다. 성경은 자기를 볼 수 있게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내부를 관찰하고 일게 만든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기를 쓰고 있는가, 내 속의 너무 많은 나, 나도 잘 모르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성경에 나오는 글 귀 하나, 사람 이야기 하나가 다 나와 관련을 맺게 된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보게 한다. 다른 사람을 읽는 힘을 준다. 다른 사람들을 공감하게도 하며 분노하게도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통찰하게 한다. 세계를 다르게 보는 눈을 준다. 이 세상 외의 세계에 대해서 상상하게 한다. 성경은 세상을 지금껏 이해하는 방식을 고집할 수 없게 만든다. 세상 밖의 관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