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일예배
유다처럼 되지 맙시다
정병한 담임목사 | 마태복음 27:3-5 | 2021-03-20
본문 | 마태복음 27:3-5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마27:3-5)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당하신 예수님은 대제사장 관저에서 한밤중에 재판을 받았습니다. 두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가 주도한 종교재판의 최종판결은 ‘사형’이었습니다. 사형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시행을 총독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 이렇게 정죄 당하시는 모습을 지켜본 유다는 비로소 제정신을 차립니다. 아무 죄도 없는 스승을 죽음으로 몰아낸 자책감에 대제사장들을 찾아가 잘못했다고 실토합니다. 핏값 은 삼십을 돌려주려 하지만 거부당하자 성소에 던져 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모습이 참혹했습니다(행1:18). 이토록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유다의 평소 내면이 어떠했는지 살펴보며 반면교사로 삼고자 합니다. 유다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유다가 시작부터 잘못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한때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던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열두 제자 중 하나로 뽑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삼 년이 되도록 풍찬노숙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예수님과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물질문제’로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직접 대제사장들을 찾아가 몸값을 흥정합니다(마26:14-16). 여기에 이르기까지 유다는 철저하게 침묵합니다. 품은 뜻 먹은 맘이 있으면 표현하는 게 좋습니다. 말은 아주 좋은 치유의 과정입니다. 유다가 잃어버린 은혜입니다.

 

2. 울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똑같은 경우는 아닙니다만 수제자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었을 때 견딜 수 없어 통곡했습니다. 큰 소리로 슬피 울었습니다(마26:75). 바로 이 울음이 유다에게는 없었습니다. 쓰디 쓴 회한(悔恨)을 울음으로 풀어낼 줄을 몰랐습니다. 우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팔복 중의 하나인 ‘위로’는 애통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총입니다(마5:4). 예수님께서 여인들을 향해 당부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녀들을 위해 울라는 것이었습니다(눅23:28). 눈물을 회복하는 은총을 축복합니다.

 

3. 돌아설 줄 몰랐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열한 제자들 모두 다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떠났습니다. 폭탄 맞은 새처럼 다 날아갔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먼저 베드로가 곧 돌이켰습니다. 여전히 자신을 숨겼고 맹세하며 부인하는 심신이 쇠약한 상태이긴 했으나 끝까지 제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제자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죽음의 길을 갔습니다. 주님께로, 제자들의 교제권 안으로 돌아왔다면 고통스러운 대가지불의 시간을 거치면서 회복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끝내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대표적인 지도자 모세와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모세는 살인자였고 바울은 지독한 핍박자였습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심각한 결격사유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제자들 역시 그랬습니다. 모두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을 위대하게 쓰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유다 역시 울며불며 주님과 제자들 곁으로 되돌아왔다면, 회복의 대가를 지불했다면 그의 인생의 마침표는 완연하게 달랐을 것입니다. 이것을 가로 막은 것이 마귀의 꾀임입니다(요13:2,27 눅22:3). 마지막 순간에 마귀의 말이 아니라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주님께로 돌아서십시오! 믿음의 교제권으로 들어오십시오. 다시 시작하십시오! 새 날이 열릴 것입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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