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행22:6-11)
바울은 예루살렘교회 리더들에게 낱낱이 선교보고를 하면서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합니다.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이 하라는 대로 따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더욱 집요하게 린치를 가하는 유대인들의 박해로 출동한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끌고 갔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바울은 기회를 얻어 유대인들에게 간증전도설교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역할을 완수하고자 온몸을 던집니다. 이 대목을 묵상하면서 마음이 심히 불편했습니다. 바울에게 무슨 약점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너무 철저하고 훌륭해서 그랬습니다.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바울의 영웅적인 신앙일상이 나와는 너무 거리가 멀게 느껴져서 오히려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실은 사도행전 9장 이후 사도 바울의 스토리를 묵상하는 과정에서 그와 깊이 연결되면서 절망감이 점점 커졌습니다.
지난주 오늘 본문의 대목에서는 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바울의 이야기를 굳이 기록으로 남겨놓으신 하나님의 의도가 있지 않을까?” 바울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강력한 신앙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강력한 경험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습니다.
1. 강력한 <영적 체험>입니다(행22:6-11).
적대감을 불태우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바울은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소개합니다(행22:1-5). 곧 이어 너무나 선명해서 도저히 평생 지워버릴 수 없는 <영적 경험>이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 영적 경험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첫째, 시각(視覺)으로 경험했습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자기를 둘러 비추는 큰 빛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강한 빛이었던지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둘째, 청각(聽覺)으로 경험했습니다. 땅에 엎드렸을 때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이것으로 시작해서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이 누구인지 소개하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예기치 못했던 시간 정오에, 예상하지 않았던 장소 다메섹 도상(途上)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남았습니다!
2. 용감한 <사람의 안내>입니다(행22:12-16).
다음으로 바울이 설명한 것이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입니다. 막상 영적 체험을 하였으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라 바울이 주님께 물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다메섹으로 가라고 지시하신 예수님께서 아나니아를 바울에게 보내셨습니다. 처음에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였습니다(행9:10-14). 그때까지만 해도 바울은 지독한 박해자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설득을 당한 아나니아가 바울을 찾아가 만나 눈을 열어주고 바울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일러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안내해준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간의 교제가 중요합니다. 큰 영적 경험을 했을 그 때 바울은 마치 갓난아기와 같았습니다.
3. 자신의 <단호한 결단>입니다(행22:17-21).
다메섹에서 아나니아를 통해서 새로운 사명을 받은 바울은 망설임 없이 다메섹과 아라비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거기에서도 황홀한 영적 체험을 합니다.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할 대상에 대해서 지시를 받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놀라운 영적 경험을 했다 할지라도 본인이 거부하고 불순종하면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대로 따르기를 결단하였습니다. 그 이후 아라비아 광야에서 삼년, 고향 다소에서 오랜 시간의 칩거를 통해 소명 숙성의 기간을 보낸 후 마침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전도자로 나섭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 하는 가정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여호수아24:2-3)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모세도 하나님께서 먼저 부르셨습니다(출3:1-16). 사무엘도 그렇습니다(삼상3:1-14) 예수님도 먼저 우리에게 오시고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11:28-30). 제자들도 곳곳마다 먼저 찾아가셔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찾기 이전에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께서 먼저 애타게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큰 일이 아닙니다. 그 분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롬10:8).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과 함께 하는 삶을 시작하는 것이, 세상이 감당치 못할 신앙생활을 하는 시작입니다. 다소간의 신앙적 경험이 있습니까? 그만큼 따라가십시오. 반대로 신앙적 경험이라고는 전혀 가져본 적이 없습니까?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충분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이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있겠습니까? 마음을 여십시오. 오직 주님과 함께 말씀과 함께 하십시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멘!
적용나눔
1.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나누십시오.
2. 깨달은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였으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나누십시오.
3. 셀원들의 문제를 놓고 십자가 합심기도를 드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