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마20:17-19)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는 도중(途中), 열 두 제자들에게 따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내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들은 나를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에게 넘겨 줄 것이다. 나는 조롱을 받고 채찍질을 당한 후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 그러나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제자들을 일깨우신 말씀입니다(마16:21, 17:22-23). 이 모든 고난의 절정은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사람을 살리는 신비가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살아난 세 사람의 경우를 살펴보면서(눅23:13-25, 23:33-43. 행2:32) 진정한 십자가의 신비, 즉 다시 사는 은혜를 증거 하고자 합니다. 그 세 사람이 누구입니까?
1. 바라바입니다(눅23:13-25).
바라바는 반란살인강도를 저지른 중범죄자로 유명했습니다(마27:16). 당시 노련하고 노회한 행정가였던 유대총독 빌라도는 ‘둘 중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마27:21) 물으면서 바라바 대신 예수님을 놓아주려했습니다. 아무리 어리석다 해도 흉악범보다는 예수님을 살려주자고 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군중들이 유대종교지도자들의 배후조정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면제도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살려주려던 빌라도의 의도가 무산되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예수님 때문에 죽을 자리에서 살아난 사람이 바라바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당시 죄수는 바라바 외에도 더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니 대단한 행운아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살아난 것은 육신 일뿐입니다. 육신의 안녕만을 추구하는 신앙은 곤란합니다.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가차 없이 예수님을 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2. 우편 강도입니다(눅23:33-43).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양편의 두 강도가 있었습니다. 왼편강도는 끝까지 예수님을 저주하고 죽었습니다. 우편강도는 처음에는 조롱하다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불쌍히 여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이보다 더 확실한 구원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 또 누가 있습니까? 이 사람은 육신의 문제는 해결 받지 못했습니다. 같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죽지 않았습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강도가 부당한 로마권력에 맞서 싸웠던 유대독립운동가였다고 설명합니다. 분명한건 범죄의 종류와 상관없이 육은 죽었으나 영혼은 산 사람,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영생을 얻은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3. 베드로입니다(행2:32).
베드로는 제자들의 대표였습니다. 모든 일에 충성스러웠고 용감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제일 앞장 서 말린 사람이 베드로입니다(마16:22). 죽더라도 따르겠다고 한 사람도 베드로입니다(요13:37). 그랬던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속절없이 배신하고 부인하고 말았습니다(마26:69-75). 사실 다른 제자들도 다 같았습니다. 신앙이 죽었습니다. 순교 앞에서 망설이고 주저하고 숨고 도망하기에 바빴습니다. 살았다 하나 죽은 자들이었습니다(계3:1).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위해서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 때 다시 살아났습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달았을 때 죽음을 불사하고 충성하는 전도자로 변모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신앙이 제대로 회복되었습니다. 타협 없이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부흥입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십자가로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갈2:20).
사도 바울은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단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셨을 때 우리도 같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그리스도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사심으로 우리가 다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죄와 세상에 대하여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 십자가에서 달리신 예수님을 위해 다시 사는 삶, 이것을 믿음의 삶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은혜가 더욱 넘치는 한 주간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