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일예배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
정병한 담임목사 | 요한복음 3:1-12 | 2020-09-27
본문 | 요한복음 3:1-12

예수님 당시 유대교에는 네 개의 그룹이 있었습니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에세네파, 열심당입니다. 다수를 차지했던 바리새파는 세상과의 구별과 경건을 강조했습니다. 사두개파는 현실주의자로서 성전중심 세력이었던데 반해 에세네파는 금욕주의자들이었고 열심당은 폭력도 정당화하는 그룹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바리새인들은 요한에 대해 조사단을 보낼 정도로 경계했습니다(요1:19-28). 요한이 전하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그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리새인이면서 유력한 지도자였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밤중에 찾아왔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만큼 진리를 찾는 간절함이 컸던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에게도 진리에 목마른 밤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에게 드린 세 가지 질문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2-3절).

니고데모가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말문을 텄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 내신 분, 선생(랍비)라고 한껏 높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예의를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에게는 곧 바로 비수를 꽂듯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는 첫째, 하나님의 나라를 보려면, 둘째, 거듭나야 한다, 즉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해서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될 만큼 부적합하고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듣는 니고데모의 마음은 매우 불편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주의해야 합니다. 

2.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4-8절)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대답에 자존심이 무척 상했을 텐데도 니고데모는 일어서지 않습니다. 질문으로 대화를 이어갑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다시 태어나기 위해 두 번째 모태로 들어갈 수는 없잖습니까.” ‘늙으면’이라고 하는 걸 보니 니고데모의 나이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어찌 보면 어린 아이 같은 질문입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중생重生)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출생을 유비(類比 analogy)로 완전히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일어납니다! 이는 말로 설명이 어려운 신비(神秘)입니다. 마치 바람이 소리는 들을 수 있으나 그 존재를 볼 수 없고 행보를 가늠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듯이 영적 출생도 실존합니다. 이는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육신은 부모로부터 태어났지만 성령으로 영이 태어나야 합니다(6절). 이를 물과 성령으로 난다(5절)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물이 의미하는 것이 세례냐, 어머니의 양수냐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죽었습니다(창2:17 롬8:10). 거듭나는 것은 영적으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의 은총 아니고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난 사람’(8절)입니다. 

3.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9-12절)

계속해서 니고데모는 ‘어떻게 how’에 매달립니다. 고정관념과 회의에 사로잡힌 유대 바리새 노인에게는 거듭남, 전적으로 새로워지는 영적 출생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영적 무지를 책망하셨습니다.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과(요2:13-17), 표적을 행하신 일(요2:23), 바람 비유를 가르치신 일(8절)을 받아들이지 않는데 어떻게 하늘 일을 믿겠느냐 거듭 책망하셨습니다. 책망도 예수님의 교수법 중의 하나입니다. 책망을 들을 때 정신 차리면 진리의 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신앙은 어떻게 보다 왜(why)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삽니다. 니고데모는 신앙의 진척이 급격하지 않았습니다. 전폭적인 헌신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밤 도전, 설명, 책망을 받으면서 바뀌었습니다! 새로워졌습니다! 그때까지 살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밤 그가 변화하였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요한복음에 두 번 나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도 믿지 않고 바리새인들이 귀신들렸다 비난하고 죽이려 들 때 유일하게 예수님을 변호한 사람이(요7:50) 니고데모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장례를 치른 위원 중 주요 인물 역시 니고데모였습니다.(요19:39) 이 둘 다 적당한 믿음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받아들인 진리가 결국은 자라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우리 또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한다 할지라도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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