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일예배
나도 변화될 수 있을까요?
정병한 담임목사 | 요한복음 4:39-42 | 2020-10-08
본문 | 요한복음 4:39-42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요4:39-42)

 

우리가 3주 째 묵상하고 있는 요한복음에는 유달리 개인 전도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요한이 자기 두 제자를 전도했습니다(요1:35-36). 두 제자 중 한 사람 안드레는 자기 형제 베드로를 전도했습니다(40-42절). 예수님께서 빌립을 전도하셨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전도했습니다(43-51절). 이들의 스토리는 아주 짧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직접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을 전도한 이야기는 아주 깁니다. 오늘 살펴 볼 사마리아 여인은 지난 주 나눴던 니고데모와 대조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성별. 둘째, 지역. 셋째, 종파. 넷째, 신분. 다섯째, 삶이 다릅니다. 니고데모는 스승으로 추앙받았고 여인은 자신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섯째, 갈망이 다릅니다. 니고데모는 찾아왔고 이 여인에게는 예수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일곱째,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습니다. 니고데모는 수용적이었고 여인은 방어적이었습니다. 여덟째, 결과가 달랐습니다. 니고데모와의 만남은 예수님의 독백으로 끝납니다. 여인은 본인과 동네 사람들까지 전도의 열매를 맺습니다. 니고데모가 점진적이라면 여인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이처럼 과정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들은 완전히 변합니다.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혹시 충분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 때문에 실망하신 분이 있습니까? ‘사람은 바뀌지 않아’ 라는 고정 관념과 회의에 빠진 분이 있습니까? 이런 분들의 본심에도 ‘나도 바뀔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과 갈망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 여인의 삶을 통해 선포합니다! 누구나 변할 수 있다!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1. 거부(拒否)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요4:5-14절).

 

예수님께서 물을 달라 하셨을 때 여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예수님은 그 이전까지 만난 적이 전혀 없는,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입니다. 사실 예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방어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외모를 보고, 음성을 듣고, 물을 달라는 요청을 접했을 때 본능적으로 자신 안에서 일어난 거부감 때문입니다. 거부감의 뿌리는 편견입니다. 이는 지역 간의 역사적인 경험과 문화에서 온 것입니다. 그 축적이 큰 장벽이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대인과 남자에 대한 여인의 적대감,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복잡하게 얽힌 사고체계를 갖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지성, 이성, 감정, 경험, 외부에서 듣는 소문 등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 거부의 벽이 생수를 맛보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벽이 문이 되게 해야 합니다!

 

 

2. 수치(羞恥)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요4:15-18절).

 

여인의 약점은 <남자와의 관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셨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수치심 때문입니다. 수치심은 개인적이며 그 뿌리가 깊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입니다(창3:9-13). 아브라함과 이삭에게는 임기응변식의 거짓말입니다(창12:10-20, 26:6-11). 모세에게는 살인죄입니다(출2:11-15). 다윗에게는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것입니다(삼하11:1-5). 이들 모두 혹독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수치심을 더하지 않으십니다. 섬세하게 다루십니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였습니다. 수치심은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통로입니다. 해결하는 방법은 진리의 조명을 받아 하나님의 용납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체험하면 놀랍게 풀려납니다. 

 

3. 회피(回避)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요4:19-20절).

 

예수님께서 창피를 주지 않으면서 여인이 자신의 죄를 직면하도록 인도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말머리를 돌립니다. 그 문제를 오픈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금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은 종교적인 논쟁거리로 끌어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회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배는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대상(하나님), 방법(영과 진리), 시기(바로 지금)가 중요하다고 가르치시면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밝히셨습니다. 회피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직면하게 하십니다. 

 

*진정한 신앙은 자유를 줍니다! 짧은 만남을 통해서 여인은 예수님을 알아갑니다. 유대인(요4:9), 선지자(19절), 마침내 그리스도라는(29절) 깨달음에 이릅니다. 벽이 열린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와서 보라. 이 사람이 그리스도가 아니냐?”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온 동네 주민들이 믿었습니다. 주민들이 여인을 향해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당신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보고 들었기 때문에 믿는 것이라고 하는데도 흔들리지 않는 맷집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습니다! 이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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