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일예배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정병한 담임목사 | 창16:13-14 | 2022-08-21
본문 | 창16:13-14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4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오늘 말씀에 나오는 하갈은 애굽 여인으로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여종이었습니다. 당시 강대국의 여인이 어떻게 떠도는 나그네인 사래의 여종이 될 수 있었는지 의아합니다. 하갈은 우여곡절 끝에 여주인 사래의 주선으로 아브람의 아이를 가졌습니다. 오랫동안 아들을 갖지 못했던 여주인과 달리 쉽게 아이를 갖게 되자 마치 자기가 주인이 다 된 것처럼 여주인을 무시했습니다. 앞뒤좌우를 가릴 만큼 철이 들지 않았던 하갈이 중심을 잡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심기가 편치 않았던 여주인 사래는 하갈을 모질게 다뤘습니다. 견디다 못한 하갈이 도망을 쳤습니다. 술(Shur)로 가는 길 곁의 사막의 오아시스인 샘에 이르렀습니다(창16:7). 그때 하갈은 불러오는 배를 뒤척이며 거절감, 외로움,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 하갈을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1. 여인에게 말을 걸어오셨습니다(창16:8).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튼 말문은 아주 간단한 질문입니다. “어디서 왔느냐. 어디로 가느냐.” 하갈이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여주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과 나눈 대화를 연상케 합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없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요4:15-18). 예수님은 여인의 말을 수긍하셨습니다. 남성을 두루 섭렵하던 그 여인에게 남편이 없다는 말은 일견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하갈은 이 여인보다 훨씬 더 솔직했습니다. 위장이 체하듯 마음도 체합니다. 바로 상처를 받을 때 그렇습니다. 상처를 받을 때 사람들은 겹겹이 쌓아놓은 채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위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도 그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물으십니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처한 상황과 우리 자신을 정확하게 보도록, 인식하도록, 자각하도록 물으십니다. 고쳐주시려고 물으시는 겁니다. 그분의 질문하시는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2.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창16:9-10).
상처를 치료하는 최고의 길은 그 상처를 직면하는 겁니다. 들여다보고 응시하고 되돌려보는 거지요. 마치 동영상을 다시 보는 것처럼. 이는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무척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동영상이 저장되어 있는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고 삽니다. 일과 취미, 술 등으로 잊고 삽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그 상처를 현실에서 재현하고 삽니다. 대를 이어 물려줍니다. 끊어야 합니다. 그 한과 매듭과 결박을 풀어내야 합니다. 하갈이 받은 명령이 무엇입니까. ‘여주인에게로 돌아가라’, ‘복종하라’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아가죽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살아날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 있습니까? 도저히 못하겠습니까? ‘나는 죽었습니다.’ 소리 내어 말을 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그 길로 과감하게 돌이키십시오. 바로 그게 진정한 회개 아니겠습니까?

3.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창16:11-12).
그 이름은 ‘이스마엘’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고통을 들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얼마나 좋은 이름입니까? 그러나 예상되는 삶은 매우 험악합니다. 첫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합니다. 길들지 않은 야생 나귀같이 살 것입니다. 둘째, 매우 공격적인 성향을 띄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들이받을 줄만 압니다. 셋째,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도 이스마엘을 치러 덤벼들 것입니다. 치고받는 삶이 될 것입니다. 넷째, 형제들과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싸움질로 점철된 인생이 되리라는 예언입니다. 산모의 고충이 낳게 될 아이에게 태에서부터 그대로 전달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도망치는 하갈을 주목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을 경험한 하갈이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짓습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아시고, 함께 하시고, 주목하시며 안전하게 지키시고 돌보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하갈이 직접 생생하게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증언이자 간증입니다. 이런 간증이 힘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이름 지어 부른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 예비하시는 하나님(창22:14), 모세 역시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출15:26), ‘여호와 닛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출17:15), 기드온은 ‘여호와 살롬’,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삿6:24)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부릅니까? 하갈을 살피시고 돌보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참된 소망이십니다. 아멘! 

오디오 듣기

00 : 00

최근 설교

자세히보기
온라인 헌금
헌금 봉헌도 편리하게,
온라인 헌금을 안내드립니다.
오시는길
온양온천교회 위치
자세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