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장에는 단 지파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직 단 지파가 땅을 분배받지 못했다는 겁니다(삿18:1). 이는 땅을 받은 적이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른 지파처럼 단 지파도 땅을 받았습니다(수19:40-48). 그런데 본토인으로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아 산악지역으로 밀려났습니다(삿1:34). 그러니까 땅을 받았으나 아직 안전한 주거지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 이것이 단지파가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단 지파가 남쪽에서 <안전한 지역>을 찾아 최북단으로 이주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지금 우리 역시 안전지대, 즉 피난처가 절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단 지파의 역사에서 얻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단 지파가 다섯 정탐꾼을 세웠습니다(삿18:2).
단 지파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숙명과 운명론에 빠지지 않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을 안전지대를 찾아 나섰습니다. 이를 위해 단 지파 사람들은 자기 가족 중에서 다섯 명의 정탐꾼을 뽑았습니다. 개척팀을 꾸린 겁니다. 선발대로 나선 이들 헌신은 대단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 때 그들에게 왕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모으고 방향을 제시하며 이끄는 사람이 없는 중에 헌신된 사람들의 일어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주변 적으로부터 시달리면서 위협을 받는 삶을 마침내 견디지 못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원하여> 일어난 용사들이었던 겁니다. 이런 지도자들이 있다는 게 복입니다.
2. 다섯 정탐꾼이 라이스 땅을 발견했습니다(삿18:7).
이 정탐꾼들이 남쪽에서 가장 북쪽 헤르몬 산(Mt. Hermon) 자락에 위치한 라이스지역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라이스(Laish)를 발견했습니다. 라이스에 도착한 정탐꾼들은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좋은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곳을 묘사한 내용을 주목하십시오(7절). 염려 없이 거주한다,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다,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다, 부를 누린다, 시돈 사람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그 땅은 다른 사람들의 간섭이 없이 편안한 삶을 구가하고 싶은 그들의 열망을 충족시키기에 안성맞춤인 땅이었습니다! 지금은 그곳을 텔 단(Tel Dan)이라고 부릅니다. 고대 성읍 국가시대에 성을 세운 높은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이곳은 물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진 곳입니다.
3. 단 지파가 원정대를 파송했습니다(삿18:11).
라이스를 발견한 정탐꾼들은 서둘러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그 땅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줬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다, 올라가자, 원정길에 오르도록 도전했습니다. 이들의 열정에 깊이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 역시 같은 비전을 공유했습니다. 완전무장을 하고 따라 나선 사람들이 육백 명이나 됐습니다. 다섯 명의 열정이 육백 명을 깨운 것입니다. 새 땅을 향한 온 지파 백성들의 열정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손쉽게 라이스를 점령했습니다.
* 하나님의 백성이 배교(背敎)하면 멸망합니다!(삿18:30).
꿈에 그리던 이상향(理想鄕), 라이스에 정착한 단 지파의 기대되는 후속 스토리는 ‘그곳에서 잘 살았다’입니다. 그러나 실상 단 지파 이야기는 정반대입니다. 아예 사라졌습니다. 송두리째 사라진 단 지파는 이후 그 어떤 역사의 무대에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습니다. 풍요의 땅에서 자취와 흔적 없이 사라진 지파가 그들이었습니다. 야곱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창49:17). 이유가 그 땅에 우상과 함께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바로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서 젊은 레위청년 제사장을 데리고 가면서 우상들도 가져갔습니다. 안타깝게도 후일 여로보암 시절에는 우상숭배의 근거지 두 곳 중 한 곳을 차지하게 됩니다(왕상12:30). 단 지파가 우상숭배를 끌어들이기도 했거니와 중심역할까지 했습니다. 축복이 아니라 멸망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상을 따라가면 반드시 망합니다.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요 희망이요 전부입니다!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