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후서 1:6-8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의 유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딤후4:6). 그는 예수님을 알고 난 후 마치 싸움이나 달리기 경주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죽음을 앞둔 그의 가슴 속에는 오직 ‘내 뒤를 이어 누가 이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하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그때 떠오른 이름이 디모데였습니다. 그에게 남긴 유언 중 중요한 한 가지가 오늘 본문에 담겨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살펴 풀어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야, 네 속에서 꺼져가고 있는 은사의 횃불을 꺼내 들어라. 거기에 나의 불을 붙여서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하라!” 이미 전에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딤전4:14).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또 한 번 더 간절하게 디모데에게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딤전4:14) 그렇다면 디모데 속에 있는 은사의 불이 왜 꺼져갔을까요?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 안에 있는 은사의 불도 다시 타오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1.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입니다(7절). 스승이자 영적 아비인 사도 바울은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사명을 이어받아야 할 디모데는 열정을 상실했습니다.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①디모데가 너무 어린 나이에 에베소교회를 맡았습니다(딤전4:12). ②몸이 너무 약했습니다(딤전5:23). 특히 위장이 약했습니다. ③성품과 기질 역시 단단치 못했습니다. ④게다가 모진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⑤이것만 해도 힘든데 교회 안팎으로 준동하는 이단들이 진리를 어지럽히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디모데의 두려움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사탄 마귀와 육신적인 성향에서 온 것이라고 따끔하게 경고했습니다. 디모데는 은사를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뛰어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사랑, 절제로 충만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두려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은 겸손한 사람이지 겁쟁이가 아닙니다. 다시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불을 피웁시다! 떨치고 일어섭시다!
2. 세상의 핍박 때문입니다(딤후3:12). 여기에서 말하는 경건과 핍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기를 추구하다가 받는 박해를 말합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시대는 말세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3:1-2) 짧은 한 구절 안에서(2절) 말세의 징조 8가지가 나옵니다. 이어 열한 가지, 즉 ‘무정, 원통, 모함, 무절제, 사나움, 선을 좋아하지 않음, 배신, 조급, 자만,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함,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함’이 나옵니다. 이 모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입니다. 이런 세상을 거슬러 살자니 저항의 세찬 바람 속에서 은사의 불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히 꺼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처지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세상을 따라가면서 진리를 경험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3:7)
3.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8절). 사도 바울이 디모데가 듣기에 뼈아픈 말씀을 했습니다. “너는 전도하는 것과 옥에 갇힌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씀은 디모데가 목회자이면서도 예수님을 전하는 것과 전도하다가 감옥에 갇힌 바울을 부담스럽게 여겼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책망입니다. 디모데는 예수님 때문에 어리석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도는 매우 미련한 것이기에 지혜롭다는 말을 듣고자 하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버렸습니다(딤후1:15). 바울이 정신이 번쩍 나도록 일깨워주지 않았다면 디모데가 다음 차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부끄러워한다면 은사의 불도 필요 없게 됩니다. 부끄러워하고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십시오.
*복음과 함께 고난도 받을 각오를 합시다. 창세기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 번 확실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첫 사람 아담 때 타락했습니다. 그 아들 가인은 형제를 죽였습니다. 노아의 후손들 역시 타락했습니다. 사람은 시종 속과 겉, 출생부터 죽음까지 온전치 못합니다. 절대로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천지만물과 우리 사람을 내신 하나님께서 망가져만 가는 사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 값을 치러주셨습니다. 하늘로 올리신 후 성령을 부어주셔서 우리 자신의 참상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 땅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고 소망하게 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고난이라는 대가를 지불한다 하더라도 억울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광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