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막14:17-20)
오늘 말씀은 주님의 생애 마지막 한 주간 목요일 행적 중의 한 장면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하루 전, 죽음을 딱 하루 앞두신 저녁에 예수님께서는 잘 차린 식탁으로 제자들을 초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누신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입니다. 간절히 바라던(눅22:15) 이 자리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슴 아픈 괴로움을 토로하셨습니다.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다.” 그 사람은 곧 ‘나와 함께 먹는 자, 곧 열 둘 중의 하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라는 설명까지 덧붙이셨습니다. 다른 이도 아닌 ‘식구’와 같이 지낸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될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겪으신 세 가지 아픔을 봅니다.
1.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아픔
지금 제자들과 함께 하는 저녁 식사는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식사입니다. 하고 싶은 말 남기고 싶은 당부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하지만 정작 제자들과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중 가룟 유다와는 이미 관계가 깨졌습니다. 이 점이 그 전날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나드 향유를 부었을 때 제자들은 분노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것을 허비하는 것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히려 그 여인의 이름을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유다는 제사장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넘겨주기로 해 놓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겁니다. 불통(不通)의 아픔을 당하는 분들이 있다면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 마음을 잘 아십니다.
2.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아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처럼 먼 거리로 떨어져 나간 유다였지만 예수님께서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콕 찝어 거명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충분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다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경고하셨습니다. 반복해서, 반복해서 돌아서기를 촉구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곁에서 들리는 듯합니다. 예수님은 유다까지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3. 끝까지 거부당하시는 아픔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요13:1) 유다는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애원하다시피 하시는 주님의 권고와 부르심을 귀를 막고 듣지 않았습니다. 이미 다른 소리, 마귀의 소리로 그 마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끝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요13:30). 돌아설 기회를 박차 버렸습니다. 주님은 유다를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으나 유다 본인이 놓아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속을 썩여도 결코 자기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버리고 떠나갈 뿐입니다. 지금 주님의 사랑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받아들이십시오.
*예수님을 따라 삽시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주님이신 예수님과 견해 차이가 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뜻이 충돌할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막14:36) 간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유다는 마귀를 따랐습니다. 그러니 서로 맞을 리가 없습니다. 성경은 ‘가룟 유다’를 ‘제 곳으로 간 사람’이라고 정의(定意)합니다(행1:25). 다른 제자들도 그랬습니다(요16:32). 진정한 신앙, 참되고 성숙한 신앙인은 나와 달라도 주님의 길을 따라갑니다. 자기 길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갑시다.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