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다는 여덟 번째 사사입니다. 아버지 길르앗이 기생을 통해 낳은 아들입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본처 아들들에게서 밀려나 돕 땅에서 건달패들과 어울려 살았습니다. 때마침 암몬이 쳐들어와 길르앗에 진을 쳤습니다. 마주한 길르앗 사람들은 미스바에 진을 쳤습니다. 문제는 백성들의 존망이 달린 전쟁에 앞서 나갈 합당한 선봉장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궁리 끝에 길르앗 사람들은 입다를 모셔오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입다는 험한 삶을 살아오기는 했으나 결코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먼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암몬족이 거절하자 본격적으로 망설이지 않고,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입다는 어이없는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 무모한 서원을 합니다. 만약에 승리를 주신다면 가장 먼저 환영하러 나오는 사람을 번제물로 바치겠다는 맹세를 한 것입니다.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후 집으로 돌아오는 입다를 맞이한 사람이 공교롭게도 무남독녀 딸이었습니다. 기가 막힌 입다가 자기 옷을 찢어버리며 탄식하지만 결국 딸을 번제물로 바치게 됩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초유의 딸 번제를 드린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승리와 딸의 목숨을 바꾼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광 없는 승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이런 경솔하고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까? 그 이유는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불안한 마음
입다가 사람들의 강권에 못 이겨 미스바로 왔습니다. 오자마자 아직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서둘러 입다를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한술 더 떠서 입다는 길르앗 사람들이 마음을 바꾸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서로 약조한 내용을 아뢰었습니다. 서약보고식을 가진 것입니다. 입다는 이렇게 확인하고 확약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내면에 가시지 않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보고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두면 이렇게 됩니다. 서원도 그렇습니다! 전쟁에 나서는 입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 표현이 하나님도 원치 않으시는 엉뚱한 서원(vow)이었던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불안(不安)은 불신앙(不信仰)입니다!
2. 지나친 승부욕.
입다에게 있어서 이번 싸움은 꼭 이겨야만 하는 전쟁입니다. 그간 기생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부당하게 당한 설움을 날려버릴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고 보았습니다. 이기기만 하면 길르앗의 우두머리 신분을 못 박아 둘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결과에 집착하게 되자 지나친 부담감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지 않으면 안 되도록 쐐기를 박아두고 싶었습니다. 무리한 서원을 하게 된 배경입니다. 결과에 집착하면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꼭 이겨야만 세상만사가 다 잘되는게 아닙니다. 질 수도 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전인적인 성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살든지 죽든지 오직 주의 뜻을 이루소서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3. 우상숭배의 영향.
처음부터 죄를 짓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무감각하게, 무신경하게 떠내려가듯이 살면 세상에 물들기 십상입니다. 싸우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죄와 싸우면서 그 죄를 배우는 경우입니다. 차라리 모르면 몰라서 짓지 않았을 죄를 기를 쓰고 싸우다보니 오히려 배우게 되더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단과 싸우다가 첫 사랑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경계하신 이유입니다(계2:4). 입다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신공양을 철저하게 금하셨습니다(레18:21,20:2-5, 신12:31, 18:10). 그런 사람들을 보면 죽이라고까지 하셨습니다. 바로 암몬족이 우상 몰렉(밀곰)을 섬기면서 사람을 바쳤습니다. 입다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원수가 하는 행습을 따른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명심하십시오. 깨어 있지 않으면! 잠들면! 이렇게 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살전5:22).
*싸움의 날에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길르앗 사람들의 비극은 싸움의 날에 앞서 나설 장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렵게 모셔온 장수, 입다 또한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행하셨습니다. 승리를 주셨습니다. 사람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온전치 못한 사람을 쓰시는 하나님께서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쓸만한 사람이 없다, 세울 일꾼이 없다, 탓하지 말고 있는 그 자리, 상황 속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입다와 같은 사람을 어리석다 하지 말고 우리 안에 있는 불안과 승부욕, 세상의 영향을 분별하여 몰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따라 가야 합니다. 싸움의 날에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