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인들에게 전한 가르침입니다. 기독교의 기본 도리를 가르친 다음 그것을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실천 할 것인가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아내와 남편, 즉 그리스도인 부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엡5:22-24). 부모와 자녀는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엡6:1-4). 노예와 주인은 어떻게 서로 배려해야 하는가(엡6:5-9). 이 중에서 오늘 말씀은 부모와 자녀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배당에서 모여 예배하거나 활동하는 몇 시간 정도조차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적나라하게 인간 본성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로서 신실(信實)하게 사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근거로 기독교인 자녀가 부모를 섬기는 도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부모를 잘 섬겨야 인생이 잘 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강조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그대들이 평생에 사는 동안 잘 되기를 바라는가? 부모님을 잘 섬기시오! 건강하게 장수하기를 바라는가? 부모님을 잘 섬기시오!’ 모세가 받은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출20:12). 다른 계명과는 달리 부모 공경 계명은 지키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을 적시(摘示)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생명이 길리라”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예가 노아와 세 아들의 경우입니다(창9:20-27). 노아는 방주를 지을 정도로 훌륭한 믿음의 가장이었습니다. 이런 그에게도 실수할 때가 있었습니다. 대홍수 심판 후 술에 취해 그만 벌거벗은 채 잠에 떨어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이 알게 됐습니다. 두 아들 셈과 야벳은 뒷걸음으로 가서 아버지를 가려주었습니다. 함은 소문을 냈습니다. 이 사건이 세 아들의 운명을 가르고 말았습니다. 셈과 야벳은 복을 받았습니다.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부모 공경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부모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잘 섬겨야 합니다.
2. 잘 섬기는 방법이 ‘순종’과 ‘공경’입니다.
부모님을 잘 섬기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순종은(順從, obedience) ‘순순히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경은(恭敬, honor) ‘공손하게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만, 부모 순종과 공경에는 어떠한 조건이 붙지 않습니다. 무조건 순종하고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는 세대가 다르고 경험이 다릅니다. 성장 환경도 다릅니다. 마음과 뜻을 일치하기 어려운 관계입니다. 원치 않는 상처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은 부모님과 복된 관계를 맺는데 어떤 조건도 두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어렵습니다. 이성과 상식, 개인주의가 만연한 지금 이건 정말이지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순종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이 성경의 모범적인 예를 보여줍니다(창22:9).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점검하셨습니다(test). 정작 시험을 받은 것은 아들 이삭의 순종 여부였습니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반항할 수 있을 만큼 이삭이 충분하게 자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제단에 잡아 바치려고 했을 때 거부하지 않고 따랐습니다. 거기에 어떤 이유도 두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순종하였습니다. 놀라운 믿음입니다!
3. 부모님의 노고를 알면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어머니가 낳으시고 아버지가 기르셨다’고 말합니다. 철이 없을 때는 나를 잉태하고 낳으신 어머님의 수고와 노고를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무지막지하게 흔들리던 삶이 끔찍하게 싫었습니다. 가정을 이룬 후 첫 아이를 낳는 아내의 산고(産苦)를 지켜보면서 어머님께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릅니다. 어머님께서 이렇게 힘들게 나를 낳으셨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가슴이 저렸습니다. 아이를 낳는 어미의 고통은 목숨을 건 사투(死鬪)였습니다! 어마어마한 아픔과 고통을 겪는 현장을 보면서 어머님에게 잘 해드려야겠구나 다짐하고 다짐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떻습니까? 어린 나의 심정을 몰라주시는 아버지, 연약해보이던 아버지가 야속한 적이 많았습니다. 이제 나이 들어 아이들을 기르는 아버지가 되고 보니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너무나 강한 분이셨습니다. 무심한 듯 자주 자리를 비우시던 아버지는 가족 부양의 책임감을 어깨에 지고 사셨습니다. 집안에 조금이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다 내가 못나서 그런가보다 자책하는 무한 부족감에 시달리시던 분이었습니다. 온갖 자존심이 상하는 일을 만나도 아무 소리 않고 감내하며 일을 하셨습니다. 생계를 짊어진 아버지의 강한 두 어깨는 보이는 것과는 달리 늘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 삶의 무게가 힘에 겨워 갈지자 걸음걸이를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옳은 길을 따라갑시다! 주 안에서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는 길은 옳은 길 중의 옳은 길입니다. 새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바른 길로 인도해주십시오.’ 강청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억하십시오. 이미 하나님께서는 옳은 길 바른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부모님을 잘 섬기며 사는 길입니다. 출애굽기의 제사장 집례복 제막 장면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출39장). “아들아, 옷 잘 입고 다녀라, 옷 잘 입고 다녀.” 제사장의 독특한 옷차림이 한없이 부담스러워 무거워하고 있는 저에게 들려온 따뜻한 소리였습니다. 가만히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어디서 많이 듣던 음성이었습니다. 바로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부모님께서 하시던 말씀, “애야, 옷 잘 입고 다녀라, 옷 잘 입고 다녀.” 아, 하나님께서는 이미 자신의 사랑의 마음을 자녀를 향한 부모의 심중에 전부 담아 놓으셨던 것이었습니다! 옳은 길로 갑시다. 부모님을 공경합시다.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