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12:1-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아브람의 고향은 갈대아인의 우르입니다(창11:28). 아버지의 이름은 데라입니다(창11:27). 아버지 데라는 우상 숭배자였습니다(수24:2). 형제는 하란과 나홀인데 하란은 삼남매를 남기고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창11:28-29). 그 중의 한 사람이 조카 롯입니다. 우상 숭배자인 아버지 밑에서 살고 있던 아브람에게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새로운 민족을 이룰 조상으로 부르셨습니다. 이 과정과 아브람의 삶이 신비스럽기도 하거니와 그야말로 ‘믿음의 교과서’를 보는 듯합니다. 이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에 두시며 복을 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당했습니다. 이후 아담의 10대손 노아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타락 일로를 걸었습니다. 급기야 홍수심판을 받아 노아의 가족을 제외하곤 모두 멸망했습니다. 방주에서 나와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는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희망을 두셨습니다. 아담에게 내리신 똑같은 복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후손들 역시 바벨도시와 탑을 건축하다가 심판을 받았습니다. 10대 손 아브람에 이를 즈음에는 완전히 타락하여 우상숭배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쯤 되면 아무리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인간을 포기할 법 하잖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아브람을 부르십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나라를 이루는 꿈을 시도하십니다.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2. 부르심의 신비를 보여줍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창6:8-9). 틀림없이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동시에 노아에게는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훌륭한 점이 많았습니다. 아브람은 달랐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노아의 하나님 신앙을 그의 후손들이 잃어버렸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우상을 극심하게 섬겼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입니다. 물론 아브람 역시 아버지 데라처럼 우상을 섬겼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가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그 아들도 우상 숭배자였다고 말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상숭배의 분위기가 지배적인 가정에서 살았던 것만큼은 확실합니다(*수24:2, ‘개역개정’과 ‘새번역’을 비교해 참고하십시오). 그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복이 되어 민족과 나라를 이루고 열방을 향한 축복의 뿌리요 씨앗으로 살아가는 대업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도 부르십니다. 바로 지금 아브람을 부르신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간절한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3. 믿음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요구한 것은 복잡하거나 애매모호하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고향,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겁니다. 노아에게는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던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는 떠나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방주를 짓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당시 세대와 어울려 살기를 원한다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요구요 명령입니다. 노아는 당시 사람들의 문화와 사상과는 정반대되는 정신을 가지고 방주를 짓고 살아남았습니다. 아브람 역시 우상숭배를 거스르는 반대정신이 없었다면 절대로 안정적인 삶의 토대를 갖춘 고향을 떠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신앙의 근본정신은 다름 아닌 이미 확보한 안전지대를 포기하고 떠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완전하지 않아도 중단 없이 따라가면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몇 가지 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부모와 친척을 뒤로 하고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떠나야 했다는 점입니다. 아브람은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납니다. 조카 롯과 관계를 정리하는 데까지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따라 사는 데에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아브람이 성장해갔다는 점을 놓치지 마십시오. 이외에도 아브람은 성품 역시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조상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한 가지를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순종하는 삶입니다! 이 한 주간도 이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