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요한복음11:39-44)
요한복음 11장의 내용은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이야기입니다. 장면은 베다니 굴 무덤 앞, 나사로가 죽어 묻힌 곳입니다.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은 깊이 우셨습니다. 절절하게 아파하시던 예수님께서 돌문을 옮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죽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할 일이 더 있다. 그러니 돌문을 열어라!” 2020년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는 오늘 혹시 죽음과도 같은 계절을 지내다가 오신 분이 있습니까? 꼭 기억하십시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돌문을 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당연한 감정을 넘어야 합니다(39절)
어려운 일을 만나면 상한 감정이 일어납니다.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돌을 옮기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마르다가 보인 반응을 보십시오. “이미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냄새가 납니다. 다 끝난 상황에 이제 와서 어쩌자는 겁니까.” 마르다의 말에는 더 일찍 와서 챙겨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가 짙게 배어있습니다. 상식적으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 감정 역시 자연스럽습니다. 원래 죽음 앞에서 느끼는 가장 일반적인 감정이 슬픔, 상실감, 분노입니다. 조금 전에 예수님을 맞으면서 마르다가 한 말입니다.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죽지 않았을 겁니다(21절).” 아쉬움과 원망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적 부정적인 상태를 넘어서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하면 됩니다.
둘째, 관념적인 믿음을 극복해야 합니다(40절)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23절). 이 말씀을 마르다는 의례적인 위로로 받아들였습니다.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정색을 하시며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25-26절) “그렇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27절). 이렇게 말을 하곤 슬쩍 예수님을 마리아에게 인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작동하는 믿음을 말씀하시는데 마르다는 종말의 때와 관념적인 신앙고백으로 미뤘습니다. 무덤 앞에서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미 말했잖느냐. 네가 믿으면 영광을 볼 것이라고.”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 하는 ‘수십 번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바울이 한 말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하). 죽음과 같은 상황 속에서 매일 다시 사는 신앙의 체험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바로 지금 일하십니다. 역사하십니다!
셋째, 외톨이 의식을 극복해야 합니다(41절)
“돌을 옮겨 놓으니...” 이 표현 속에는 여러 명이 연합하는 장면이 담겨있습니다. 마르다 혼자 옮긴 게 아닙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특히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이 합력하여 돌문을 옮겼습니다. 당시 무덤 돌문은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이었고 무게는 250~300kg 정도였습니다. 드물게 부자들은 돌문을 둥글게 만들었습니다. 이 경우 훨씬 더 무거웠습니다(700-1500kg). 도굴꾼이나 야생동물에게서 시신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렛대를 이용하거나 장정 스무 명 정도가 힘을 합쳐야 옮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을 바꾸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한 사람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관련된 사람들 모두 힘을 합칠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냄새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냄새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화장실이 없는 집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무덤 같은 영역이 있습니다. 너무 역해서 들춰보기도 그렇고, 들여다보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직면하는 게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거기를 들춰야 합니다. 굳게 닫힌 돌문을 여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와 영광으로 새날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