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행19:2)
오늘 말씀은 바울이 에베소교회 제자들에게 던진 매우 도전적인 질문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겨우 열두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영적 상태를 주저하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낸 그들의 답변이 에베소 부흥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까?
오늘은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 회심 283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존 웨슬리(1703-1791)는 영국국교회 사제였던 사무엘과 그의 아내 수산나 슬하 19남매 중 열다섯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35세가 되던 해인 1738년 5월 24일 저녁 런던 시내에 위치한 교회에서 한 예배 사회자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는 것을 듣는 도중 성령을 받았습니다.
“나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올더스게이트(Aldersgate) 거리로 가서 한 신도 모임에 참석하였다. 거기에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8시 45분 경,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변화의 역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을 때, 이상하게 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구원을 받기 위해 오직 그리스도를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신이 생겼는데,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를 사하셨으며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하셨다는 확신이었다.”<그 날의 일기 중에서>
존 웨슬리는 그 길로 동생을 찾아가 “나는 믿는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놀라운 영혼 구원과 부흥의 시작이었습니다. 그의 회심을 통해서 세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영적 위기는 곧 쇄신(刷新)의 기회다
존 웨슬리는 어려서부터 어머니 수산나의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옥스퍼드대학교를 졸업했고(21세, 문학사), 과정을 밟아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25세). 옥스퍼드대 내에 홀리클럽(Holy club)에서 신앙 실천과 훈련에 전념하였습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규칙을 지키며 엄격했던지 규칙주의자들(Methodists)라는 별칭을 얻었고 이것이 후일 감리교회의 명칭이 되었습니다. 선교의 꿈을 안고 미국 조지아주로 떠났습니다(32세). 하지만 2년도 채우지 못하고 귀향해야 했습니다. 일신상의 문제와 신앙의 회의로 곤란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위기의 바닥에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극적인 변화, 회심을 경험했습니다. 영적 흑암이 찾아 올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영혼의 먼동이 틀 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막의 샘처럼 솟아나는 법입니다.
2. 교회 직분과 믿음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속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직분이 곧 그 사람의 믿음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교회의 직분이 곧 그 사람의 믿음과 꼭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선교지에서 돌아와 신앙의 근본이 흔들리는 영적 흑암에 빠졌을 때, 그때 존 웨슬리는 한창 젊은 목회자였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웨슬리 목사님은 매우 솔직했습니다. 다시 한 번 그의 회심의 경험을 주목해보십시오.
“나는 내가 구원을 받기 위해 오직 그리스도를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신이 생겼는데,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를 사하셨으며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하셨다는 확신이었다.”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한 가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죄 사함과 믿음으로 받는 구원! 이것을 목사였을 때 중심을 바꿀 정도로 받아들였다는 것이 그의 회심의 고백입니다. 경종으로 들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3. 교회는 무엇보다 성령공동체여야 한다
성령을 받은 후 존 웨슬리 목사님은 불타는 전도자로 바뀌었습니다. 강단에서 설교할 기회가 막히자 거침없이 야외로 나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영국국교회는 그를 분리주의자라고 공격했습니다. 웨슬리를 따르는 이들은 독립을 하자고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존 웨슬리는 영국국교회로부터 독립을 원치 않았습니다. 야외설교와 즉흥기도를 드리는 것 외에 차이점이 없다고 했습니다. 감리교회로 모이면서도 예배(liturgy)라는 말보다 집회(service), 교회(church)대신 회(society), 예배당을 집회소(preaching house) 혹은 채플(chapel)이라고 부르며 끝까지 성찬을 국교회에서 받도록 권면했습니다. 오직 교회가 성령의 공동체로 영혼을 구원하는데 전념할 뿐 다른데 마음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온전히 성령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존 웨슬리 목사님이 별세했을 때 영국감리교도의 수는 순회 목회자가 300명, 평신도 설교자가 1,000명, 신도가 8만 명이었습니다. 당시 영국 인구는 1,000만 명으로 추산합니다. 영국 전체 인구의 1/125이었습니다. 영향력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작금 영국감리교회는 영국국교회와 통합을 바라는 정도까지 교세가 약화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는 무엇을 따라 움직입니까? 우리 교회가 성령을 따라 온 교우가 구원의 확신과 영혼 구원에 매진하는 성령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