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8:30-36)
지난 한 주 동안 요한복음 8장을 묵상하였습니다. 8장에 나오는 사람들(유대인)을 볼 때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주위에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고자 합니다. 의도와 달리 이내 예수님을 죽이려 달려들었습니다. 늘상 예수님 곁에 머물지만 결코 진리에는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점을 마음에 두고 오늘 말씀을 주목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상이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믿는다고 하는 이들에게 더 깊이 들어가야 할 영역이 자유라고 보셨습니다. 자유에 이르는 길을 일러주셨습니다. 자유는 먼저 자유하지 못한 상태를 전제합니다. 이미 자유하다면 자유를 언급하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세가지 유형의 신앙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점을 말씀드리면서 자유롭게 하는 신앙의 길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1. 종 – 속박
자유하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자신이 묶여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유대인들이 말했습니다.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아비는 마귀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정상인줄 알았는데, 뿌리가 마귀로부터 태어난 괴상한 존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니 실로 불쾌한 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종이 아니다. 종이 된 적도 없다. 강력하게 항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은 단호합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다(37절). 내 말을 들을 줄 모른다(43절). 조금 전 믿지 않는 상태에 있었던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다그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떤 느낌이 듭니까?
2. 고아 – 불안
성경에는 종과 아들만 있는게 아닙니다. 고아도 있습니다. 고아는 부모를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엄연히 부모가 있는데도 그 부모님이 어디 있는지 몰라 고아처럼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더 비극적인 고아는 부모와 함께 살면서도 건강하게 관계할 줄 몰라 오히려 상처와 아픔을 겪는 고아 아닌 고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14:18).
3. 아들 – 자유
예수님께서는 종과 아들을 대비하여 자유를 설명합니다. 한 집에 살아도 종은 종이고 아들은 아들입니다. 종이 아들의 권리를 넘볼 수 없습니다. 아들은 그 집안의 가족이고 소유자이며 가사를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유산을 받습니다. 거리낌이 없습니다. 제한이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원래 우리는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근본 종이었습니다. 종에서 해방되어 아들이 된 것입니다. 자유한 삶은 곧 속박에서 풀려난 삶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자유에 이르는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역설을 넘어야 자유롭게 될 수 있습니다. 첫째, ‘내 말에 거하라.’ 예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으라, 즉 지속적으로 따르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정의하는 믿음은 영접하듯이 받아들이는 것이고 지속적으로 따르는 것입니다(8:12). 왔다 갔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내 제자가 되고’ 스승 밑으로 들어가야 제자가 됩니다. 예속되고 구속을 받으면서 단순히 지식을 전수받는 것에서 나아가 스승의 삶을 따라서 사는 자들입니다. 셋째, ‘진리를 알지니’ 진리를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디 자유케 하는 진리를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