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41:50-52
50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51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창세기에 요셉의 이야기(12장)가 아브라함보다 더 많이 나옵니다. 그만큼 요셉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요셉이 두 아들을 낳고 이름을 짓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두 아들의 이름에 자신의 신앙 인생의 간증을 담았습니다. 장남 ‘므낫세’의 뜻은 ‘잊어버림’, 즉 ‘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고난과 아버지 집안에서 겪은 모든 일을 잊어버리도록 해 주셨다’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었습니다. 둘째 아들 ‘에브라임’의 의미는 ‘번성’, ‘창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이 일의 시간적 배경은 7년의 대풍년이 끝나고 혹독한 7년 흉년에 접어드는 시절입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후일 사무엘에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heart)을 보느니라”(삼상16:7) 이 말씀이 아니었다면 영성 깊은 사무엘 선지자조차도 이새의 장남 엘리압의 외모에 반해 왕이 되는 기름을 부을 뻔했습니다. 요셉은 용모가 빼어났습니다(창39:6). 하지만 요셉은 그 용모 단장과 복장이나 장신구를 애굽 스타일로 바꿔야 했습니다. 태양신을 섬기는 온 제사장의 딸과 결혼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바뀐 외양 때문에 형제들이 요셉을 선뜻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요셉은 형제들을 금방 알아봤습니다(창42:8). 하지만 중심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젊은 엘리트 관리였습니다. 우상숭배가 틈을 탈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시선도 외모가 아니라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둘째, 망각의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
요셉이 머리가 낡아져서 과거 일들을 잊은 게 아닙니다. 형제들에게 당한 살해의 위협과 짐승처럼 버려졌던 치욕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순간순간 새록새록 되살아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첫아들을 품에 안을 때 알았습니다. 자신 안에 형제들에 대한 증오가 사라졌다는 것을!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이런 자유를 누리다니! 하나님께서 자신 내면을 깨끗하게 정화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생각해봐도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 간증을 첫아들의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잊으려고 애쓸 것 없습니다. 잊히지 않는다고 탄식할 것 없습니다. 또 너무 자주 깜빡깜빡한다고 치매가 온 것 아닌지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잊게도 하시고 꼭 필요한 것은 기억나게도 하십니다. 주님만 잘 섬기십시오.
셋째,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
혹시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틀린 것 잘못된 것만 눈에 쏙쏙 들어와 괴로운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의 정서적 에너지는 항시 고갈되어 있습니다. 신경질적이고 매우 예민하며 어느 것 하나 순순하게 넘어가는 게 없을 정도로 까다롭습니다. 요셉은 달랐습니다. 둘째 아들을 낳고 받은 은혜입니다. 첫째와 달리 둘째 아들을 낳았을 때 요셉의 눈에는 밝은 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두운 과거가 정리되고 나니 모든 것이 좋아 보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칠 년 풍년을 지켜봤습니다. 이 은혜를 둘째 아들의 이름에 새겼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자주 보고 집중해서 보는 것이 현실이 됩니다. 우리는 이미 번성한 자들입니다.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하나만 봐도 그렇습니다. 번성과 창성을 보십시오. 믿음의 눈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셉이 알고 보니 깨닫고 보니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은 오늘의 번성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형제들에게 배신을 당하지 않았다면, 보디발의 아내에게서 무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 관원장이 잊지 않았다면 어떻게 애굽 왕으로부터 그 시간 그 자리로 부름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기가 막힌 타이밍 아닙니까. 그러므로 지금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하루하루 주님만 의지하여 내면을 단단히 하고 살아가기를 다짐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