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본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13:1-3)
오늘은 5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새로 오는 6월은 온 교회가 예배에 대하여 집중하는 기회로 삼으려 합니다. 예배는 우리 교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첫 번째 핵심가치입니다. 우리 교회는 최우선적으로 예배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예배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적 행위입니다. 모든 신앙적 실천의 의도와 목적이 예배, 즉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습니다. 일례로, 이 관점에서 보면 전도란 다름 아닌 불신자를 예배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안디옥교회로부터 예배를 배웁니다.
1. 예배를 배웠습니다(행11:23)
안디옥교회의 구성원은 예루살렘교회와 달랐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복음은 유대인에게만 전해야 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안디옥에서 비로소 헬라인들에게도 전했습니다. 드디어 복음이 인종의 벽을 넘게 된 것입니다(행11:19-20). 예루살렘교회 역시 매우 개방적이었습니다. 바나바를 보내 안디옥교우들의 신앙이 성장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바나바가 가장 먼저 가르친 것이 예배입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행11:23). 이것이 바나바가 가르친 예배의 중심 정신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주님과 함께 하는 이들, 그들로부터 시작해서 주님과 함께 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삼는 사람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우리 예배의 전부입니다.
2. 모든 일의 시작이었습니다(행13:1-2)
현대인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뭐라도 움직이며 하려고 애를 씁니다. 신앙생활도 그래야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디옥교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무언가를 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것 외에 다른 건 할 줄 몰랐습니다. 안디옥교인들은 무엇을 하는 것 이전에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모임과 찬송과 교제가 마냥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떡을 떼며 음식을 먹는 것도, 육신을 위해 아무 음식도 먹지 않는 것 역시 다 주님과 함께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오로지 주님과 함께 하고자 애를 썼을 뿐입니다.
3. 성령이 함께 했습니다(행13:2-3)
세상 모든 일에는 형식과 내용이 있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형식에만 치우치면 틀은 지킬 수 있겠으나 정신을 상실할 위험이 큽니다. 반대로 정신을 지키자며 틀을 소홀히하다보면 그 정신마저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안디옥교회는 이 점에서 절묘했습니다. 국적의 벽을 넘는 과감함과 동시에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이 어우러졌습니다. 성령께서 개입하시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는 인내가 있었습니다. 역동적인 성령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성령님의 지시를 전한 사람들은 선지자들임이 틀림없습니다. 성령님이 개입하시는 예배,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벅차오릅니다.
*온전한 예배가 교회의 힘입니다. 온전한 예배에는 가르침과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 역동적인 성령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받은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로 받아들였습니다. 겸손하지만 철저하게 분별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거대한 선교의 문을 여는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힘이 있는 진정한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