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일예배
셋의 후손들
정병한 담임목사 | 창세기 5:3-5 | 2022-06-19
본문 | 창세기 5:3-5

3아담은 백삼십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5:3-5>

 

성경은 하늘과 땅의(천지) 놀라운 창조로 시작합니다(1-2). 안타깝게도 타락한 인간은 창조의 특권을 상실합니다(3). 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의 희망으로 끝을 맺습니다(21-22).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이야기, 즉 구원을 받는 이야기가 성경의 흐름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5장에는 세 가지 족보가 나옵니다. 첫째, 천지만물의 내력입니다(2:4). 둘째, 가인의 족보입니다(4:16-24). 셋째, 셋의 족보입니다(5:3-32). 천지만물의 내력을 뺀다면 두 가문의 족보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한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나고 자란 후손들이지만 삶의 길과 질은 전혀 달랐습니다. 유다는 무섭게 경고합니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유다서1:11). 가인의 길로 가지 말고 셋의 후손처럼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셋의 후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 순교자의 후손들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이야기는 생략하고 그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가인은 질투와 시기의 화신이었고 아벨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억울하게 그릇된 삶을 사는 형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가인이 첫 아들을 낳고 에녹이라 불렀습니다. 아벨의 후손 셋도 6대 손으로 같은 이름 에녹을 두었습니다. 이름은 같은데 삶은 하늘과 땅처럼 달랐습니다. 셋의 후손 에녹은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겪지 않고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그의 아들 므두셀라는 인류 사상 최장수의 삶을 살았습니다. 969세를 살았으니까요. 세상이 불공정하고 정의가 실종된 곳이기는 하나 순교자들의 후손들을 하나님께서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3:33)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37:25).

 

2.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완벽했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도 너무나 뚜렷하게 비교가 되는 특징이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입니다. 가인의 후손들의 삶을 주목해보십시오(4:18-24). 라멕의 대에(5) 이르면 가축업의 조상이 나오고 음악가들이 나오며 철기기계문명을 이루는 대가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일부다처(중혼), 살인과 폭력, 복수로 점철되고 있습니다. 셋의 후손들은 달랐습니다. 셋의 후손 중에도 같은 이름 라멕이(8) 나옵니다. 방주를 지은 노아의 아버지입니다.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에 홍수가 있었습니다(7:6). 라멕에 죽기 5년 전입니다(5:30).

노아는 500세에 세 아들을 두었고(5:32), 며느리가 있을 때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6:18). 물심판을 대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들과 함께 온갖 조롱을 받으면서도 방주를 짓다가 홍수가 나기 전에 죽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이름이라도 가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은 이렇게 달랐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은 장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길을 가겠습니까?

 

3. 진정한 예배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은 예배입니다. 셋의 후손들이 어떠한 예배자들이었는 지는 아들을 낳고 붙인 이름과 그들의 살았던 시대를 정리한 한 문장이 잘 보여줍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4:26). 셋은 아들을 낳고 에노스라고 지었습니다. ‘사람, 연약하다, 약하다는 뜻입니다. ‘연약한 사람, 사람은 연약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붙인 이름 아니겠습니까? 그 중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이름을 불렀다는 건 도움을 청했다는 것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는 뜻도 됩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도 그 중심과 의미는 사뭇 다를 수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건 그들, 그 때가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가인도 아벨도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그들의 예배를 통해서 예배란 무엇을 드리는가보다 어떻게 드리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습니까. 예배자의 삶을 잃지 마십시오.

 

*지금 결정하십시오. 결단하십시오! 지금 우리에게는 여호수아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나이 어린 최측근으로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잘 보았습니다. 마지막 죽기 전에 흔들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24;15). 다행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수아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결정하십시오. 결단하십시오. 하나님의 편에 서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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