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1:18-23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023년의 마지막 한 달, 12월의 첫 주일입니다. 교회는 오늘부터 대림(강)절을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성탄절을 기다리며 믿음의 진정한 의미를 가다듬는 절기입니다. 떠돌기(방랑放浪) 쉬운 마음을 다잡아 오롯이 주님과 함께 하는 순례의 절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1:1-17)로 시작하는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한 상태에서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남편 요셉은 조용히 이혼하려 했다. 요셉의 꿈에 나타난 천사가 겁내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오라 했다. 마리아의 임신은 성령으로 된 것이니 아들을 낳으면 예수라 불러라. 그가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그 이름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이 모두 이사야 선지자가 한 예언의(사7:14) 성취다.’ 이 말씀은 진정한 복음의 시작이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바로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 선명하게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복음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들어보십시오. 평범한 두 남녀가 만나 약혼을 했습니다. 덜컥 약혼녀가 임신을 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으로부터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하신 일입니다. 당황하고 고민하는 요셉의 꿈에 나타난 천사가 설득했습니다. 낳을 아기 이름과 그가 할 일까지도 자세하게 일러주었습니다. 백성들을 죄에서 건져 낼 메시아일 뿐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징표요 증거라는 겁니다. 모두 누가 한 일입니까? 누가 시작한 일입니까? 전부 하나님께서 먼저 시작하셨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소위 성육신(Incarnation)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성육신을 모르면 십자가와 부활, 승천, 재림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1:9)
2.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신 예수님은 시간이 흐를수록 숨길 수 없었습니다. 점점 불러오는 배 안에서 출산을 기다리며 자랐습니다. 마침내 남편 요셉까지 알게 됐습니다. 예수님의 족보, 예수님의 출산 에피소드, 이 모든 게 확증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진리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를 경영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드디어 육안으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상상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다! 유대인이 되시다! 그것도 전능자가 아무 능력 없는 아기가 되시다! 어른이나 장수, 혹은 왕, 시대의 영웅도 있는데 하필이면 아무런 능력이 없는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다니. 스스로 돌아눕지도 못하고 먹거리를 해결하지도 못하는 갓난아기 말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나 접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이 조용히 우리 곁에 다가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로 경험하는 삶이 진정한 성탄의 의미입니다. 이토록 성육신은 생각할수록 뜻이 깊습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53:2)
3. 하나님이 죽으러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에게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찾아와 경배하는 목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죽이려고 덤벼드는 헤롯 일당이 있었습니다. 눈에 불을 켜고 죽이려 드는 사람들이 훨씬 힘이 셌습니다. 마태복음 2장 중반에 보면 매우 안타까운 장면이 나옵니다. 헤롯의 칼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을 떠났다가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걸음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는 것으로 일단락됩니다. 상과 경배를 영원히 받으셔도 시원치 않을 예수님을 이렇게 핍박하다가 죽이다니 있을 수 있는 일는 일입니까?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류의 죄와 악을 담당하시기 위하여 죽임당한 어린 양, 제물이 되신 예수님, 그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최상의 믿음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다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볼 수 없다, 안 계신다, 믿을 수 없다 하겠습니까. 나와는 상관이 없다 하겠습니까. 최상의 믿음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것입니다.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해가 됩니다. 영혼이 살아나고 삶이 바뀝니다! 매년 돌아오는 성탄의 절기를 맞으며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맞아들이고 모셔 들이기를 강권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새롭게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새날이 열릴 것입니다. 아멘, 아멘, 아멘!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9-14) *요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