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창립 38주년 메시지:
벽이 문이 되는 교회-대적을 만날 때(행4:5-12)
오순절 성령충만을 받은 120명의 전도를 받아 예루살렘교인이 삼천명이 되었습니다.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 거지가 완전케 된 표적을 통해 남자만 오천명이 늘어났습니다. 가히 폭발적인 부흥이 예루살렘교회에 일어났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이들의 공격과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도록 뒤에서 온갖 모략을 꾸미고 부활을 부정하기 위해 뇌물로 헛된 소문을 퍼뜨렸던 산헤드린공회원들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그들이 이제는 그의 제자들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산헤드린공회가 다시 소집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관리들, 장로들, 서기관들입니다. 특히 유력한 대제사장 문중이 합세하였으니 그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어제 베드로와 그의 일행을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들을 불러내어 재판정에 세워 놓고 심문을 합니다(5-6절). 재판을 받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대적자들의 심각한 반대에 부닥친 사도들의 모습을 주목해보십시오. 그중에서도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1. 상황을 받아들였습니다(7절).
산헤드린공회는 자신들의 위엄을 한껏 과시하면서 베드로를 한낱 못된 죄수로 취급했습니다. ‘도대체 너 따위 무식한 놈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는 식으로 권위와 이름을 들먹이며 압박했습니다. 소위 ‘그 사람의 말(메시지)를 막으려면 그 사람(메신저)를 공격하라’는 정치적 술수를 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워 떨지 않습니다. 석방이나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아예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제 늦은 밤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한채 옥에 갇혔다가(행4:3) 끌려나와 재판을 받는 처지였지만 일상생활을 하다가 온 사람처럼 평안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당하는 박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애를 쓰면 쓸수록 세상과 어긋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잘 맞지 않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놀라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4:12).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일3:13).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3:12).
2. 표적을 간증했습니다(8-10절).
베드로의 간략한 신앙 여정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베드로는 원래 어부였습니다.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없이 살았습니다(마4:18). 그러다가 동생의 전도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삼년여 동안 함께 지냈습니다(요1:40-42).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그간의 신앙고백과(마16:16-17) 주님을 신뢰하던 마음을 다 잃어버립니다(마26:74-75). 예수님 부활 소식을 들은 후에도 다시 옛 어부생활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주님께서 직접 바다 고기잡이 현장으로 찾아오셨습니다(요21:1-3). 성령을 부어주시고 능력을 입혀주셨습니다(행2:1-4).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서 자기에게 없는 것과 있는 것이 무엇인지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여종 앞에서 부인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거지에게 보물처럼 전해줍니다. 대적과 박해를 일삼는 자들의 심문 앞에서도 당당하게 그 ‘예수의 이름’을 언급했습니다. 예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처럼 위장하거나 더 이상 감추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이것이 그의 간증입니다!
3. 예수를 증거했습니다(11-12절).
재판정에서 베드로는 간증을 나누는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기회로 활용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증거>는 법정 용어입니다. 어떤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증인으로서 그의 이름을 걸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진술하는 법정 행위입니다. 베드로가 목숨을 걸고 산헤드린공회 법정에서 심문을 받을 때 한 말이기 때문에 그 말이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심문하는 그들이 얼마 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구세주로 세우셨습니다. 그들이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세주이십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재판정에서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었습니다!
*오직 성령충만이 답입니다.
어떻게 베드로와 그의 일행이 이렇게 믿음 위에 견고하게 서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까? 견줄바 없이 교활한 서슬퍼런 권력자들 앞에서 그들이 보기에 무식한 어부 베드로가 어떻게 이리 당당할 수가 있었습니까? 답은 오직 하나,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충만한 그들은 그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이 사실이고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가장 시급하게 회복해야 할 신앙입니다. 성령충만! 이는 오직 갈망하고 간구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내리는 은총입니다. 성령충만하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성령을 따라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목숨 걸고 전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수행합니다. 우리와 교회 위에 이 은혜가 지금 이 시간 임하기를 간구하며 축복합니다. 성령이여, 이곳에 우리에게 임하소서. 충만하게, 충만하게!
1.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나누십시오.
2. 깨달은 말씀을 지난 한 주간 삶에 어떻게 적용하였습니까?
결과를 나누십시오.
3. 셀원들을 위하여 십자가합심기도를 드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