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0:1~8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2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4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말씀의 현장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애굽왕 바로에게 범죄하여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에 있는 옥에 가두니 요셉이 갇힌 곳이라. 친위대장은 두 관원장을 요셉이 수종 들도록 한다. 며칠 후 그들은 꿈을 꾸었고 내용은 서로 달랐다. 꿈을 꾼 다음 날 아침에 요셉이 시중들고자 들어가니 그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가득하였다. 요셉은 두 관원장에게 묻는다. 무슨 일로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는지 묻자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해석할 자가 없다고 말하니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요셉은 말하며 내게 말하면 해석해 주겠다고 한다.
나의 반응
요셉의 삶은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있는 자리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신분은 죄수의 신분이지만 죄수로 살지 않고 감옥의 주인으로 살고 있다. 예전에도 요셉은 꿈을 꾸었다. 그 꿈으로 감옥까지 오게 되었지만, 그는 전혀 낙담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두 관원장들의 꿈을 해석해 주겠다고 한다. 어디서 그런 당찬 용기가 있을까? 진취적인 요셉을 본다. 모함에도 주눅 들지 않고 있는 그는 아직도 자신이 꿈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해석하는 지혜를 주셨나? 요셉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보기 원하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로 산 내 자녀들이 매일 삶의 무게로 눌러서 살고 있다면 아마도 하나님은 서운한 맘이 되겠다 싶다. 아버지가 부자이고 주권이 아버지께 있는데 늘 내 손만 바라보고 사는 자녀를 볼 때 아버지는 답답하지 않겠는가?
아버지 마음
사랑하는 나의 딸아 내가 너와 오늘도 함께하고 너와 동행하며 너를 지켜주리라. 나는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알고 있느니라. 너는 지금 현실만 주목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멀리 아주 멀리 바라보고 있지. 이것이 은혜를 받는 자의 안목이란다. 딸아 너도 받은 은혜로 멀리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렴. 그렇다면 요셉처럼 전전긍긍하지 않고 살 수 있단다. 하루를 살더라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살 수 있지.
주님과 동행하기
세상을 얻은 자의 모습, 염려와 근심에서 멀어져 있는 모습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것이네요. 염려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잘 안 돼요. 멀리 보지 못해요.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네요. 앞에 있는 것으로 마음이 조이면서 살고 있네요. 아버지 저의 눈을 열어 주소서.